사람들은 모두가 자기가 자기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말에 "자기 잘난 맛에 산다."라고 한다. '나'는 다 잘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못살게 군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주장하면 할수록 나는 나의 약점과 내가 부족한 부분을 못 보는 눈뜬장님이 되는 것이다. 무의식 안에는 나도 모르는 또 하나의 '내'가 존재한다. 나도 모르게 나로 하여금 실수를 하게 해서 내가 바라고 있는 목표와 내가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순된 행동을 하게 된다. 그 모순을 나중에 의식하고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마음의 그림자
하지만 전혀 본인이 모순을 진행하고 있는지 모르고 자기는 늘 정당하다고 믿는 경우도 많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나만을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나만을 내세우면 바로 그 밑바닥의 나의 부분을 모르게 된다. 심리학적인 의미에서의 그림자란 바로 '나'의 어두운 면, 즉 무의식적인 측면에 있는 나의 또 다른 분신이다.
자아의식이 강하게 존재감을 드러낼수록 그림자의 영역은 점점 늘어나게 된다. 나의 선한 부분을 분명하게 나타낼수록 악한 것이 그 뒤에서 짙게 도사리게 되며 선한의 지를 뚫고 나올 때 나는 느닷없이 약한 충동의 제물이 됨으로써 사회적인 물의를 발생시키게 된다.
정의를 주장하는 사람이 부정의 수렁에 자기도 모르게 빠지며 도덕적인 결백을 신조로 내세우는 사람이 성적인 추문을 일으키며 자유와 고귀한 정신을 지향하는 지식인이 권력과 탐욕에 눈이 멀어 다른 사람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이 세상에서 좋은 것만을 고집하고 자기는 옳다고만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나쁜 것에 대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위선자라든가 이중인격자가 바로 자기 마음속의 검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못하는데서 온다. 낮에는 점잖은 의사지만 밤마다 포악한 괴물로 변하는 지킬 박사와 하이든이라는 영화가 이를 나타낸다. 의식적 인격과 무의식적 인격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좋은 예시이다. 하이드는 의사 지킬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림자는 의식의 바로 뒷면에 있는 여러 가지 심리적 내용으로 열등한 인격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마치 어두운 창고에 내버려진 곡식이나 연장과 같은 것으로 오래 두면 곰팡이가 피고 녹이 슬게 된다. 다시 말해 인지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므로 세분화된 채로 남아있는 근본적 심리적 경향 심리적 특징들이다.
그림자의 외부대상 투사
그림자가 외부의 대상에 투사되어 의식될 때는 자아는 그대상에서 성숙하지 못하고 열등하고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등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된다. 따라서 그림자를 본인의 일부분으로 수용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그림자는 본래부터 그렇게 악하고 부정적인 열등한 것이 아니라 그늘에 가려 있어서, 다시 말해 무의식 속에 버려져 있어 분화되어 나타날 기회를 잃었을 뿐이고, 그것이 의식되어 햇빛을 보는 순간, 그 내용들은 곧 창조적이며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림자의 부정적인 모습은 대부분 상대적인 것이다.
드물게 가끔 그림자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자아의식의 좋은 면이 억압되었을 때이며, 이를 '내가' 스스로를 지나치게 모자라고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좋은 것'은 남에게만 있다고 생각할 때이다. 그림자는 흔히 외계에 투사되며 대부분 투사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그림자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성서에 '남의 눈의 티를 보면서 자기 눈의 들보를 모른다'라고 했다. 그림자의 투사도 이와 유사하다. 투사란 물론 자아가 하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되는 것이어서 자아는 단지 투사된 대상에 감정적으로 집착하게 됨으로써 어떤 무의식적인 내용이 투사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전혀 그런 사실도 모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무의식적 내용의 투사현상
무의식적 내용의 투사현상에서는 어느 경우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강력한 감정이 투사대상을 바라보게 하여 대상에 대한관심을 멀리하고 싶어도 멀리할 수 없을 만큼 대상에 집착한다. 그 감정은 긍정적인 매혹과 감동의 느낌일 수도 있고 불쾌감이나 혐오감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그림자는 후자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모든 무의식의 투사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 감정 반응의 이유를 자아가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그림자가 투사될 때 사람들은 '왜 그런지 모르게', '공연히' 어떤 대상에 대하여 혐오감이나 그 외의 부정적인 감정반응을 일으킴을 알게 된다. 그림자는 자아의 바로 밑바닥의 어두운 그늘 속에 존재하는 심리적 경향 또는 내용이므로 그 특징은 상당히 자아의식의 특징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림자의 투사는 곧잘 자아와 유사한 대상을 향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테면 같은 성의 친구사이, 자매 간, 형제간, 동료사이 같은 성의 가족사이 등에서 왜 그런지 모르게 그 사람은 보기만 해도 싫고 긴장되고 화가 나고 거북한 느낌이 든다. 여기에는 그림자의 투사가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현실에 무슨 꼭 인과관계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공연히 잘난 체하니까 덮어놓고 남에게 미루거나 이기적이거나, 영악스럽고 교만해서 등의 상당히 부정적인 감정으로 채색된 성격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물론 그림자의 투사로 인해 대인관계의 갈등이 깊어지면 실제로 이해관계에 얽힌 싸움이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본래의 투사가 더욱 강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