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이란 무엇일까. 그것을 정의하는 것은 복잡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존재를 진정으로 깨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무의식적' 또는 '무의식'이라는 말을 씁니다. 하지만 너무나 쉽게 그런 것은 없다고 단정 짓습니다. 그런 것이 과연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가 아닌가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는 것이라면 차라리 무의식의 존재를 인식하는 데 바람직한 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의 개념은 머리로 생각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체험을 기반으로 얻은 지식에 붙인 이름입니다. 하지만 경험이란 그 어떤 것을 경험하는 주체에 따라서 여러 가지이므로 같은 심리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학설 가운데도 무의식의 존재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학설이 있고, 또한 같은 무의식이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그 기능과 내용을 말할 때 의견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무의식
인간의 마음속에 무의식이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것을 과학적으로 다가가 대상으로 삼고 연구를 한 사람은 프로이트였으며, 그러한 무의식적인 정신이 어떤 일정한 과정을 거쳐서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노이로제 환자를 치료해 가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즉 히스테리 환자가 팔다리에 아무 이유 없이 마비를 일으키고 그를 최면에 걸어 오래전에 경험한 마음이 상처이면서 지금껏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과거의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켜 말하게 하니까 마비증상이 없어지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증상은 의식에서 떨어져 나가 무의식의 내용이 되어버린 체험군이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신체에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고, 무의식화한 그 경험내용은 대부분 현실과는 동떨어져있기 때문에 억압이라는 용어로 설명될 수 있고, 그것은 성적인 욕망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프로이트는 설명했습니다.
그 내용이 프로이트가 강조한 성적인 충동에서 기인한 것뿐 아니라 다른 도덕적인 갈등이나 그 외의 많은 것이 무의식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므로, 융에게 무의식은 보다 넓고 깊은 인간정신의 심리를 포함하는 것이 됩니다.
융에 의하면 무의식이란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 아직 모르고 있는 우리 정신의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너머의 미지의 정신세계, 그것을 바로 무의식이라고 칭합니다. 무의식이라는 단어는 그런 정신세계를 표현하는데 아주 적합한 단어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그대로 쓰이고 있고 이것을 '미지의 정신계' 또는 '미의식'이라고 불러도 상관이 없음을 앞에서 다뤘습니다
노이로제와 무의식
반드시 노이로제를 통해서만 무의식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용어가 의식의 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어떤 미지의 힘을 암시한다. 가령 '나도 모르게'라는 말을 하면서 실수를 한다든가 '어쩔 수 없이', '홀린 듯이'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모두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조절을 할 수 있는 정신계 너머의 또 하나의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사람들은 본인이 잘 모르는 그런 힘의 작용을 신또는 조상 탓이라고 미루어버린다.
하지만 귀신이나 신, 조상은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나' 즉 의식의 한계를 초월하는 초인적인 힘의 실체에 대하여 사람들의 생각은 결국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생각이 아니고 사람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생각인 만큼 우리의 마음속에 그 생각과 비길만한 내용이나 그 생각을 산출하게 하는 원인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이런 생각은 물론 신이 나 귀신이 실제로 존재하냐 아니냐 하는 논란과는 별개이다.
융은 무의식에는 두 가지의 층이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그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성장하는 동안 겪은 개인생활에서의 경험 내용 가운데서 무슨 이유에서든 잊어버린 것, 현실세계의 도덕관이나 가치관 때문에 현실에 어울리지 않아 억압된 여러 가지 내용으로서 반드시 성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 그것을 포함한 모든 희구나 심리적 경향 그리고 의식적으로 외면하는 괴로운 생각이나 감정과 의식에 도달하기에는 그 자극의 강도가 약한 문턱밑 지각의 내용, 이모 든 것으로 구성된다.
무의식의 특징, 자율성
무의식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자율성이다.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지속적으로 기능을 발휘하는 식물성 신경기능처럼 무의식은 의식작용에 구애받음이 없이 그 스스로의 법칙에 따라서 움직여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의식은 의식작용보다도 더 항구적이며 때로는 그를 뛰어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자율성은 하나의 창조적 자율성이다. 무의식은 의식을 그 자율적인 힘으로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에게 여러 가지 미래에 대한 선택지를 보여주고 제시하는 것이 사실이다.
무의식의 의식에 대한 관계는 상대적이다. 보상작용은 무의식에서 매우 핵심적인 기능이다. 다시 말해 무의식은 의식에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하고, 그럼으로써 그 개체의 정신적인 통합을 원한다. 의식이 너무 일방적으로 지적이면 무의식은 정적인 특징을 갖고, 의식이 지나치게 외향적이면, 무의식은 내향적인 성질을 띤다. 융은 이런 관계를 그의 심리학적 유형론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글을 쓰면서 소개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탐구는 우리의 미래에도 매우 밀접한 영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심리학적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