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5. 3. 11. 10:07

프로이트의 능동성과 수동성

심리 생활의 기본적인 대립 쌍 중하나입니다. 욕동의 목표의 결정적인 형태를 규정하는 것이다. 발생학적인 관점에서 능동, 수동의 대립은 최초의 대립이지만 뒤에 오는 대립 쌍, 즉 남근, 거세와 남성, 여성에 통합된다. 프로이트가 능동성과 수동성으로 주로 욕동의 양태를 정의한다고 해서, 그것이 능동적 욕동과 수동적 욕동의 대립을 내포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프로이트는 특히 아들러와의 논쟁에서, 아들러가 능동적이 되려는 욕동의 정의 자체에 착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각각의 욕동은 단편적인 활동이다. 수동적 욕동이라고 경솔하게 말하게 되면, 수동적 목표를 가진 욕동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말할 수 없게 된다.

프로이트의 능동성과 수동성

 

목표의 수동성

정신분석가들은 그러한 목표의 수동성을 환자가 피학증을 겪기를 바라거나 보이기를 바라는 특권화된 예에서 관찰할 수 있다. 여기서 수동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 차원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나는 겉으로 드러난 행위의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그 뒤에 숨어있는 환상의 차원이다. 행위의 측면에서, 가령 피학증 환자는 확실히 만족스러운 상황에 놓이기 위해, 행동으로 욕동의 요구에 부응한다. 그러나 환자가 타자의 처분에 맡겨질 때만, 그는 그의 최종적인 행위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수동적인 위치가 환상의 차원에서 어떻게 그 반대와 불가분의 관계가 되는지 보여줄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환상의 차원에서는 능동성과 수동성이라는 두 용어가 항상 동시에 병존하거나 교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구되는 만족의 성질이나 환상의 위치에서, 그러한 상보성이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인 어떤 역할의 고착에는 환원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은폐할 수는 없다.

 

 

 

주체의 발달

주제의 발달에 관한 한, 프로이트는 능동성과 수동성의 대립에 큰 역할을 부여한다. 그것은 다른 대립 쌍, 즉 남근 거세와 남성 여성에 선행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항문기에 그 대립은 성생활의 도처에서 발견되면서 명확히 나타난다. 능동적 요소는 근육 조직과 관계가 있는 장악 충동으로 구성되고, 수동적인 성적 목표의 기관은 성적인 자극에 민감한 장의 점액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이 능동성과 수동성이 항문기에 공존하는 것을 내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아직 반대 항으로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다.

 

리비도가 발달함에 따라 세 개의 커다란 대립 쌍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서로 뒤섞이고, 중첩되고, 결코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결합하고, 결국에는 서로 대체된다. 젖먹이와 어린아이의 삶은 전자의 두 개로 특정지 어지고, 청년은 세 번째 대립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그녀는 어린아이가 어떻게 그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완전히 수동적으로 되는 것부터 시작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대립 쌍

프로이트가 종종 사용한 언어로, 심리학적이거나 정신 병리학적인 표출의 차원에서건, 아니면 메타 심리학적인 차원에서건 커다란 기초적인 대립을 가리킨다.

 

이 용어가 성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에 나타날 때, 그것은 몇몇 도착증의 기본적인 특성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엄청난 이론적 중요성을 갖고 있다. 예컨대, 가학증에 대한 연구는 가학증적인 지배적인 경향과 동시에, 피학증적인 쾌락을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관음증과 노출증은 동일한 부분 욕동의 능동과 수동의 형태로 긴밀하게 쌍을 이루고 있다. 그러한 대립 쌍은 도착증에서 특히 눈에 띄기는 하지만, 신경증의 정신분석에서 한결같이 발견되고 있다.

 

그러한 임상 자료를 넘어서, 대립 쌍이라는 개념은 프로이트의 사상에서 항구적이고 본질적인 요소로 등록된다. 즉, 그것은 갈등을 궁극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이원론이다. 프로이트 학설의 여러 단계에서 그 이원론이 취하는 형태가 어떤 것이든 우리는 대립 쌍, 대립, 양극성등과 같은 용어를 만나게 된다. 그러한 개념은 기술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이론화의 차원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주체의 연속적인 리비도의 입장을 정의하는 세 가지 대립, 즉 능동과 수동, 남근과 거세, 남성과 여성에서 그러고, 양가성이라는 개념에서, 쾌, 불쾌의 쌍에서 그리고 좀 더 기본적으로 욕동의 이원론의 차원에서 그렇다.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